2008년 03월 03일
사회적 분노를 접근하는 태도에 대하여
우리는 '개똥녀'에게 분노한다~!
제가 트랙백한 내용 자체는 꽤 글을 잘쓴 명문일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례를 가지고 다른 사례와 비교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썼습니다. 각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와 더불어 '분노'를 일으킬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침묵'하는 국민들에 태도에 대하여 비판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저런 접근이 타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총 5문단으로 이루어진 분노한 사회적 '현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분노를 일으켰던 대표적인 사안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 3번째 문단같은경우 사안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나머지 2문단은 '분노'를 일으킬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사회적 현상을 말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5문단 같은경우 사회적 분노가 쉽게 발현된 경우와 2문단 처럼 사회적 분노가 쉽게 발현되지 않는 이유를 '만만하고 연약한 상대 앞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니까'라고 글쓴이는 정의를 내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적 현상이 그리 단순한 정의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만만하고 연약한 상대'라는것 보다 제 견해로는 사회적 '분노'가 전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될때 가능한 일인것입니다. 개똥녀 같은경우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도서관에서 떠들었는데도 사람을 때린 자들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아이를 버린 '남자'에 대하여 수많은 '여성'이 분노하고, 군대를 기피한 유승준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이 분노하며, 위안부를 주제로 누드를 찍은 이승연에 대해서는 '위안부'라는 피해적 상황에 대해 '자본'적 태도가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것입니다. 이런 분노가 일으킨 사항들은 반대적인 움직임이 있을수 없을것입니다.
만약 반대를 한다면, 오히려 반대를 하는 상황에 대하여 더 큰 분노가 일으킬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기서 살펴볼것은 아래 분노하지 않는 사회적 현상이겠지요.
'전두환.노태우'는 한 시대의 국가원수였습니다. 분명 이 국가원수는 제 견해로도 인간 말종들인데,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전두환 노태우가 국가를 잘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단체도 존재하며, 또한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20대이하 학생들에게는 전혀 신경꺼리조차 되질 않습니다. 또한 광주에 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광주사태에 본질적 의미를 깨닫기란 더 어려운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들에게 '사회적 분노'를 못일으키는것은 어쩌면 아직도 그들에 대한 진실을 접근하기 어려워서 그런것일수 있습니다. 아니면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다른 분노할만한 사건에 비하여 적어서 그런것일수도 있지요.
김우중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김우중이 대우를 이끌었던 과정에 대해 '신화'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또한 김우중이 다시 나옴으로 인하여 경제가 살아난다는 '망상'을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생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와서 경제상황이 좋아질것이라고 착각하고 그가 나온것을 잘했다고 주장할수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생길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전 국민적 '분노'는 불가능 하겠지요.
또한 '조선일보'라는 정체성 문제가 걸립니다. 조선일보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편향적인 신문입니다. 또한 글쓴이 말대로 '친일행적'이 분명한 신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노가 일으킬수 없는것은 그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보수'성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보수성향'자체에 대하여 돌을 던지기는 어쩌면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들이 자신의 판단으로 그 성향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혹은 조선일보 논점에 대해 난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주장한다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 보수적 성향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이런경우 사회적 분노가 일으켜지기란 매우 어렵게 되겠지요.
어떤 사회적 분노가 일으킬려면 제 개인적 견해로는 '전 국민이 일괄적으로 분노'할수 있는 공통적 사회적 현상이어야 합니다. 설사 그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다른 반대하는 자들이 있더라고 '극소수'라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분노가 생기지 않는 경우는 물론 그들이 힘이 강력하여 그런것일수 있지만, '전국민이 일괄적으로 분노'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성'등등. 수만가지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단순히 그들이 힘이 있다고만 생각한다는것은 사회적 분노를 못일으키는 사람들을 전부 '힘이 없는 나약자'로 만드는 위험함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전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좀더 고민하고 생각해서 그 원인을 하나하나 해결해보는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트랙백한 내용 자체는 꽤 글을 잘쓴 명문일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례를 가지고 다른 사례와 비교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썼습니다. 각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와 더불어 '분노'를 일으킬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침묵'하는 국민들에 태도에 대하여 비판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저런 접근이 타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총 5문단으로 이루어진 분노한 사회적 '현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분노를 일으켰던 대표적인 사안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 3번째 문단같은경우 사안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나머지 2문단은 '분노'를 일으킬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사회적 현상을 말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5문단 같은경우 사회적 분노가 쉽게 발현된 경우와 2문단 처럼 사회적 분노가 쉽게 발현되지 않는 이유를 '만만하고 연약한 상대 앞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니까'라고 글쓴이는 정의를 내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적 현상이 그리 단순한 정의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만만하고 연약한 상대'라는것 보다 제 견해로는 사회적 '분노'가 전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될때 가능한 일인것입니다. 개똥녀 같은경우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도서관에서 떠들었는데도 사람을 때린 자들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아이를 버린 '남자'에 대하여 수많은 '여성'이 분노하고, 군대를 기피한 유승준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이 분노하며, 위안부를 주제로 누드를 찍은 이승연에 대해서는 '위안부'라는 피해적 상황에 대해 '자본'적 태도가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것입니다. 이런 분노가 일으킨 사항들은 반대적인 움직임이 있을수 없을것입니다.
만약 반대를 한다면, 오히려 반대를 하는 상황에 대하여 더 큰 분노가 일으킬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기서 살펴볼것은 아래 분노하지 않는 사회적 현상이겠지요.
'전두환.노태우'는 한 시대의 국가원수였습니다. 분명 이 국가원수는 제 견해로도 인간 말종들인데,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전두환 노태우가 국가를 잘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단체도 존재하며, 또한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20대이하 학생들에게는 전혀 신경꺼리조차 되질 않습니다. 또한 광주에 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광주사태에 본질적 의미를 깨닫기란 더 어려운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들에게 '사회적 분노'를 못일으키는것은 어쩌면 아직도 그들에 대한 진실을 접근하기 어려워서 그런것일수 있습니다. 아니면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다른 분노할만한 사건에 비하여 적어서 그런것일수도 있지요.
김우중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김우중이 대우를 이끌었던 과정에 대해 '신화'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며, 또한 김우중이 다시 나옴으로 인하여 경제가 살아난다는 '망상'을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생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와서 경제상황이 좋아질것이라고 착각하고 그가 나온것을 잘했다고 주장할수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생길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전 국민적 '분노'는 불가능 하겠지요.
또한 '조선일보'라는 정체성 문제가 걸립니다. 조선일보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편향적인 신문입니다. 또한 글쓴이 말대로 '친일행적'이 분명한 신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노가 일으킬수 없는것은 그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보수'성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보수성향'자체에 대하여 돌을 던지기는 어쩌면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들이 자신의 판단으로 그 성향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혹은 조선일보 논점에 대해 난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주장한다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 보수적 성향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이런경우 사회적 분노가 일으켜지기란 매우 어렵게 되겠지요.
어떤 사회적 분노가 일으킬려면 제 개인적 견해로는 '전 국민이 일괄적으로 분노'할수 있는 공통적 사회적 현상이어야 합니다. 설사 그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다른 반대하는 자들이 있더라고 '극소수'라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분노가 생기지 않는 경우는 물론 그들이 힘이 강력하여 그런것일수 있지만, '전국민이 일괄적으로 분노'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성'등등. 수만가지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단순히 그들이 힘이 있다고만 생각한다는것은 사회적 분노를 못일으키는 사람들을 전부 '힘이 없는 나약자'로 만드는 위험함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전 이러한 사회적 분노가 일으키지 않는 이유를 좀더 고민하고 생각해서 그 원인을 하나하나 해결해보는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by | 2008/03/03 09:08 | 정치,사회 | 트랙백(1)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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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해가 넘치는 세상
우리는 참 많은 오해 속에 둘러싸인 체 살아가고 있다. 의욕을 가지고 뭔가를 내놓을 때마다 거대한 반대에 부딪힌 어떤 집단이 들끓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꺼낸 말들에는 대부분 '오해'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어떤 공무 집행의 과정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달굴 때 공무 집행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향해 '사진 한 장에 담긴 호소성에 빠져 상황을 오해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n......more
어려줘질 것인데...
"또한 김우중이 다시 나옴으로 인하여 경제가 살아난다는 '망상'을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생길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문제지요. 개똥녀니, 도서관 커플이니 하는 사람들에게도 알고보면 사정이 있을수 있습니다. 다만 그건 신경안쓰고 원색적인 비방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죄질이 단순하고 욕하기 쉽기 때문이겠지요.
전두환이나 김우중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강하게 비난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정의가 바로 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언론과 사법체계의 잘못이겠지요.
하지만 그다지 바뀔수 있는 걸로 보이지 않는군요. 이명박 특검이나 복권하는 5공 인사들로 보아서 말이지요.
흑설탕기사/ 바꿀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되죠. ^^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원인'부터 찾아보고 그 해결책을 같이 논의해본다면 바꿀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thomas gilovich가 confirmation-bias라는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편향 확증이란 개념인데, '확증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불리한 정보를 무시해버리는 쪽이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하는것이죠.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확증해주는 것들을 쉽게 발견하거나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하여,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것은 무시하거나 덜 찾아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선입관이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중시하고 반대되는 의미의 정보를 경시하려는 경향이 '편견'과 맡물릴경우 더욱 크게 발전되는게 그게 바로 '편향 확증'이란 것이죠.
예를들어 '김우중'이 '우리나라 기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라고'만' 알고 있거나, 그렇기 믿는다면 그가 저지를 '죄'에 대한 정보를 무시하게 될것입니다. 혹은 '전두환' 과 '노태우'의 '군부독재'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적합했다고 '믿는다면' 그가 행했던 수많은 다른 내용들은 무시하게 되겠죠.
결국 이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쉽게 해결될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일례로 데이비드 로제한이 벌인 '가짜 정신병 실험'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아니면 앨런 소칼이 벌린 '지적사기'같은경우도 대표적인 예일겁니다.
원인이라면 그것이 원인이겠지요.
그분에게 모든 현상은 자신의 주장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않더군요.
다름이 아닌 나와 다른건 전부 틀림(!)이란 생각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의 전형이라고나 할까요?
合/ 역시 마찬가지로 본문하고는 상관 없는 덧글이라 따로 코멘트 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사회적 현상이고 나발이고 별로 신경을 안쓴다 이거지..뭐 계속 이슈화되는 문제들을 보면 알 수 있잖소? 샘물교회, BBK, 태안반도 등등..물론 종비련이 "깜짝" 이벤트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뭐 종비련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뭐 암튼 얘기가 삼천포로 계속 흘러가는디...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 어중이떠중이 나부랭이어서 소위 "키보드 워리어들" 혹은 "주둥이 워리어들"만 판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음. 옳은 소리하는 사람들? 졸라 많지.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이 하는 건? 말로만 떠드는 것뿐. 결국 대중이 그걸 듣거나 읽고 "공감 100%"밖에 할 수 없는 거...So what? 달라지는 게 뭐가 있는데? 결국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슬픈 "반복"을 하고 있는 것 뿐...
문제는 '자기비판'도 없는 '키보드워리어식' '사회비판' 현상이겠지요. 이글루에서 많이 보여지는 모습들로서, 저로서는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