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 로그인  


역사를 해석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하여

전체로서의 역사학, 즉 다양한 문화에 대한 지식으로서의 역사학은 치료법 이론이기는 하지만 치료 기술의 학문 자체는 아니다..[...]..정신의 치료와 대비될 만한 일로서, 육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구의 각 지방이 어떠한 퇴화 현상과 질병을 야기하고 있는지 또 반대로 어떠한 치료 요인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인류는 의학적 지리학을 통해 규명하여야 한다.

-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 , 김미기옮김, 책세상, p340~341쪽중 일부 -


우리가 보통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있어서 가장 쉽게 나오는 학자는 바로 E. H. Carr 일것이다. 그가 쓴 주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가 바라본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정의 내렸다. 이 말은 역사가가 역사를 기술할때의 역사 의식에 영향을 받으며, 이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통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이탈리아 역사가 크로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했다. 역사는 현재의 눈을 통해 현재라는 문제의 시각으로 과거를 보는 데 있으며, 따라서 역사가의 주요 작업은 과거의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거나 기록된 것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역사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역사주의 이다. 역사주의는 쉽게 말해서 역사를 학문화 하려 파악했던 점이라는 것이다. 헤르베르트 슈네델바흐에 저서인 '헤겔 이후의 역사철학'에서 그는 역사주의를 총 3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역사에 대한 탐구가 따라야 하는 규약과 규범들의 총체로서의 특정한 학문적 활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역사 연구에서의 정신과학적 실증주의와 둘째로 과학적, 철학적 세계 해석에서 보편적이고 초시대적으로 타당한 체계를 거부하고, 개념과 규범의 타당성 자체를 역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는 역사상대주의, 세번째로 보편적 인간 본성을 역사 변화의 불변조건으로 보는 역사적 계몽주의에 반해, 모든 문화적 현상은 역사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이해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문화적 역사주의를 포함한다.

이러한 역사주의는 민족주의코드와 만나 특히 두번째 정의인 역사 상대주의와 결합하게 되는데, 현실적인 규범과 도덕의 대한 개별적인 타당성을 중점으로 역사를 만나게 되고, 역사가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어떤 논리적 정합을 판단하지 않은체, 맹목적으로 믿게 되는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하여 존 루카스의 '역사연구입문'이라는 글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믿기지 않는 전쟁 이야기를 되풀이하신다. 그리고 항상 지나치게 많이 말씀하신다. 그것은 얼마만큼 진실인가?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자신이 속했던 28사단 C대대 A중대가 독일의 무장열차를 포획했다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린 성조지를 오려오신다. 그 인쇄된 기록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확증하는 것처럼 보인다(이 신문이 선정적이거나 부정확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당신은 할아버지의 이름이 잘못 표기되었고 고향이 틀리게 적혀 있는 등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자). 이제 기록의 문제에 이르렀다. 그 기록이 과연 역사의 본질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역사란 단순한 기록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 — 당신의 기록 역시 역사적이다. 그렇다, 당신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앨범, 티켓 몇 장, 약간의 사진, 찬장에 있는 몇 장의 오래된 엽서, 그리고 1924년에 아바나로 떠난 신혼여행을 묘사한 할머니의 편지. 이 모든 것이 역사적 기록인데, 그 형태나 양식, 색 혹은 향이 누군가의 기억과 상상력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만은 아니다. 할머니가 손으로 쓴 편지는 옛스럽고 읽기에 까다로우며, 종이는 누래지고 잉크는 색이 바랬다. 그 편지는 과거의 흔적, 어떤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 평범한 낡은 편지는, 말하자면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의 각료회의를 타이핑한 기록만큼이나 역사적인 기록이다. 사실 그보다 더 역사적인 기록이다. 왜 그런가? 그 각료회의에 대한 기록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보지도 않은 채 혹은 서명하지도 않은 채 비서에 의해 초고가 작성되고 타이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 할머니의 편지는 그녀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것이다. 그 편지에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과 같은 상투적인 표현이 얼마간 있을지라도, 그것은 진실된 진짜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적 기록(모든 인간적 표현)의 진본성(authenticity)과 진정성(genuineness)은 중요하다. 요컨대 당신의 할머니는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대통령만큼이나 역사적인 인간이며, 그가 남긴 단편적인 '기록'은 그에 대한 증거 중 하나일 뿐이다. 요컨대 '역사적 인간'과 '비역사적 인간'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기 때문에 역사적 자료와 '비역사적' 자료 사이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셰익스피어는 '헨리 5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의 삶에는 역사가 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이렇다 — 모든 인간의 삶은 역사적이다. 그들의 삶의 일부만 역사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의 역사의 구성요소이다.

- A Student's Guide to the Study of History , John Lukacs, ISI Books, 2000, 이재만,임경준 옮김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많은 오류를 범하곤 한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만약 히틀러가 권력을 잡지 않았더라면, 지식인들은 유럽에서 피신하지 않았을것이다.'라는 이야기라든지 '박정희가 구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한국 근대 민주주의는 더 빨리 찾아왔을것이다.'라는 명제 등등 이런 참 또는 거짓이 증명될수 없는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IF라는 가정법을 통하여 수도없이 이야기된다. 최근 sonnet포스팅 에서도 그런 덧글들이 많이 보였는데, 심히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1942년 헴펠의 논문 '역사에서 일반법칙의 기능'이란 내용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역사학자들이 만약 과거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지식으로 간주하게 된다면 충족시켜야할 기준이 있는데 그것이 '법척을 감싸는 설명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 모델을 쉽게 말해서 어느 역사적 주장 - 추운 밤 자동차 라디에이터가 어는것과 같은 사실의 주장 - 이 있다고 하자. 이러한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학자는 물의 행태에 관한 특정한 추정되는 참인 일반화를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일반화는 가설적 형태 - 만약 이러이러한 것이 참이라면, 저러저러한 것은 참이다 - 로 나타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역사학자는 최소한 '한계조건' - 특정한 밤에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간다라든지, 라디에이터에 내강수가 없다는 것등 - 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들 명제는 일반화에서 '만약'이라는 조건설을 실증하며, 역사학자는 라디에이터가 얼었음을 추론할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IF라는 조건설로 역사를 이야기하려 한다면 최소한 'IF법칙을 감싸는 설명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대다수 그러한 설명모델을 제시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모델 없는 IF법칙은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안될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역사를 대처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무엇일까? 니체의 저서중 유고 단편에는 이런말이 나온다.

[지나간 모든 과거는 백가지 감각으로 쓴 저서이고 해석들이며, 진실로 여러가지 미래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미래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또한 과거에 대해 한가지 해석을 규정한다.]

이 말은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과거와 역사를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역사를 대처하는데 있어서 '현재'를 중점으로'만'이야기하는데 너무 정신이 팔려 있는 나머지 '미래'에 관점은 생각조차 하질 않는다. 최근 불거지는 광복절 과 건국절에 대한 논쟁과 이승만 대통령 반일,친일 논쟁 혹은 박정희와 관련된 수많은 논쟁들은 전부 현재'만'을 위한 역사해석이다. '미래'를 중점으로 역사해석을 하는 자는 사실 거의없다. 왜 우리는 '미래'를 중점으로 역사를 대처하지 않는 것인가? 과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오로지 '현재'관점으로만 보려 한다면 결국 현재에 처한 수많은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분쟁이 일어나는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우리가 할수 있는 기본적인 역사해석에 입장은 '현재' 그리고 '과거'를 서로 소통하는데 중점을 둘 뿐만이 아니라 '미래'마저 소통할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by 하늘선물 | 2008/08/17 20:41 | 정치,사회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songhs.egloos.com/tb/202265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긁적 at 2008/08/17 21:10
ㅎㅎ 제 입장에서는 좋은 타이밍에 올라온 포스팅이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